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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休-하동] 햇빛 좋은 낮, 천년차밭서 ‘차마실’···달빛 좋은 밤, 섬진강따라 ‘달마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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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경제] 최성욱 기자
속성
2021/12/28
■'놀루와' 프로그램 따라 본 하동
전문가·주민 손잡고 여행 프로그램 기획
초록 물결 녹차밭에서 다과상 받아보고
해 지면 호롱불 들고 섬진강 따라 달맞이
금오산 해돋이 명소, 여행 출발지로 제격
코로나19로 해외여행 길이 막히면서 예전에는 여행객들의 발길이 잘 닿지 않던 국내 중소 도시가 대안 여행지로 떠올랐다. 지난 2년간의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은 한마디로 국내 여행을 재발견하는 시간이었다. 그렇게 주목 받은 중소 도시들이 이제 새로운 고민을 시작했다. 여행객의 방문이 일회성에 그치지 않도록 해외여행 재개 이후에도 끊임없이 여행객들을 불러 모으고, 지역민과 상생해 수익을 창출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경상남도 하동은 지속 가능한 지역 여행의 미래를 가장 잘 보여주는 곳이다. 그 중심에는 ‘하동주민공정여행 놀루와(협)’이 있다. 놀루와는 전문가와 주민, 도시 청년 등이 함께 만든 여행 협동조합이자, 주민 여행사로 여행지의 문화를 존중하고 지역민들에게 혜택이 돌아갈 수 있도록 한 공정 여행 모델을 구축해 이목을 끌고 있다. 한 해를 마무리 하는 연말, 놀루와가 운영하는 여행 프로그램을 위주로 경남 하동을 둘러봤다. 단순히 여행사가 짜 놓은 프로그램을 따르기만 하는 게 아닌, 직접 주민과 소통하며 지역을 느끼는 과정이다.
하동은 우리나라에서 차를 처음 재배하기 시작한 시배지(始培地)다. 신라 828년(흥덕왕 3년) 하동군 화개면에 당나라에서 들여온 차나무 씨앗이 뿌려진 후 1,200년 가까이 녹차가 재배되고 있다. 처음 차 밭이 조성된 곳은 화개장터가 있는 화개면 일대. 지리산 자락에 뿌려진 씨앗은 주변으로 퍼져나가면서 대규모 야생 차 군락을 이뤘다. 그 중심이 화개면 정금차밭이다. 화개장터를 지나 굽이굽이 고갯길을 따라 한참을 더 올라가야 나오는 산골 마을 정금리에서는 지금도 주민 대부분이 대를 이어 차 밭을 일구며 살아간다.
하동군은 지난해에 정금리 일대 50만 ㎡(15만여 평)의 차 밭을 관광휴양형 다원(茶園)으로 가꾸고 천년차밭길을 조성했다. 지난해 전통 차 농업의 세계중요농업유산 등재를 기념해 차 시배지 일원을 걷기 명소로 키우고자 조성한 탐방로다. 천년차밭길은 정금차밭에서 신촌차밭을 거쳐 쌍계사 인근 차 시배지로 이어지는 총 2.7㎞ 구간으로 야생 차 밭을 조망하면서 심신을 정화하는 힐링 코스다. 마을 입구에 차를 세워두고 야생 차 밭을 풍경 삼아 시멘트 포장길을 따라 20분쯤 걸어 올라가면 언덕 위에 정자 정금정이 나온다. 정자 위에 올라서면 산비탈에 구불구불 고랑을 따라 가지런히 줄지어 선 차 밭과 저 멀리 섬진강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 드넓은 하동 차 밭에서 차를 생산하는 농가는 줄잡아 2,000여 가구. 이곳에서 나오는 차 브랜드만 300개에 달한다고 한다. 농가마다 녹차부터 홍차, 블랜딩 차까지 다양한 차를 선보이는데 제다(製茶) 방식에 차이가 있어 각자 다른 맛을 낸다. 수확철인 봄을 제외하면 농가들이 운영하는 다실에서 차의 역사와 제다법 등을 들으며 천년차밭에서 수확한 다양한 차를 맛볼 수 있다.
놀루와의 ‘차마실’을 이용하면 차 재배 농가의 특별한 대접을 받을 수 있다. 놀루와가 5개 농가와 운영 중인 프로그램 ‘차마실’은 다도용 피크닉 세트를 대여해주고 차 밭을 걷다가 차를 마실 수 있도록 한 프로그램이다. 단체 참가자들에게는 농가 주인들이 직접 다과상을 차려 내놓으며 차 생산 과정과 제다법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정금정에서는 참가자들을 위한 가야금 연주와 클래식 음악회도 열린다. 다른 참가자들과 멀찍이 떨어져 주변 풍경에만 집중하며 차를 음미해도 좋다.
화개면에서 섬진강을 따라가다 보면 그 유명한 최참판댁이 있는 악양면 평사리다. 평사리 고소산 정상에 세워진 스타웨이는 지난해 9월 문을 연 전망대다. 산비탈에 기둥을 세워 그 위에 별 모양의 커다란 구조물을 설치했는데,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의 배경이 된 270㎡(83만여 평)의 평사리 들판과 굽이치는 섬진강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최적의 장소다. 맑은 날에는 저 멀리 광양 백운산까지 조망할 수 있을 만큼 시야가 탁 트여 있다. 섬진강 수면으로부터 150m 상공 위에 자리한 만큼 평소에도 강한 바람이 부는 데다 바닥에는 유리를 설치해 짜릿함까지 느낄 수 있다. 고소공포증이 있다면 전망대 커피숍에서 여유롭게 노을이 지는 풍경을 감상하면 된다.
고소산에서 내려다보면 평사리 들판 한가운데 수령 200년가량의 ‘부부송’이 나란히 서 있다. 다정히 서 있는 모습 때문에 소설 속 주인공인 ‘서희와 길상 나무’라고도 불린다. 놀루와의 또 다른 프로그램인 ‘소나무가 주는 교훈’은 ‘부부송’ ‘문암송’ ‘십일천송’을 탐방하고 관련 스토리, 생태, 인근 문화재와 역사 자원 속에 산재한 교훈을 배워보는 과정이다. 전문 해설사의 안내에 따라 악양뜰에 자리한 동정호와 고소성, 주변 마을, 골목길을 둘러볼 수 있다.
하동에는 유독 소나무가 많다. 평사리에서 섬진강을 따라 이어지는 19번 국도 반대편에는 천연기념물 하동송림이 자리하고 있다. 하동송림은 조선 1745년(영조 21년) 당시 도호부사 전천상이 강바람과 모래바람을 막기 위해 조성한 소나무 숲이다. 750여 그루의 노송이 우거진 숲 주변으로는 섬진강을 감상하며 숲 주변을 한 바퀴 돌 수 있는 멍석 길이 깔려 있다. 바깥에서 바라보는 것보다 안에서 밖을 내다보는 풍경이 더 아름답다.
해가 지면 섬진강변에서는 ‘달마중’ 프로그램이 열린다. 강변 백사장에서는 보름달 아래 호롱불을 들고 달마중을 하고, 섬진강에 소원을 적은 종이배도 띄워본다. 모래밭에 담요를 깔고 삼삼오오 둘러앉아 따뜻한 차를 마시며 지역 출신 시인의 시 낭송을 듣고, 베토벤 ‘월광소나타’를 감상한다. 눈앞으로는 까만 밤하늘에서 별이 쏟아질 듯 반짝인다. 보름달이 뜨지 않거나 구름에 달이 가렸더라도 상관없다. 백사장에는 대형 인공 달이 설치돼 1년 365일 주위를 환하게 비춘다.
금오산 정상 해맞이공원은 하동을 한눈에 조망하며 해돋이를 볼 수 있는 명소다. 정상에서는 남해 바다 전체가 시야에 들어올 만큼 조망이 좋다. 전국적으로 알려진 해돋이 명소가 아니기 때문에 ‘하동 짚와이어’ 개장 시간만 피하면 호젓한 일출 여행도 가능하다. 정상까지 차를 타고 갈 수 있다는 점도 매력이다. 정상에서 펼쳐지는 하동과 남해 사이 노량 앞바다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마지막 격전지다. 새해 하동 여행의 출발지로 삼기에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