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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이 만든 마을미술관 "서울 안부러워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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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도민일보] 허귀용 기자
속성
2021/05/27
하동 입석마을 '선돌'개관
방치된 공동작업장 새단장
'소' 주제로 첫 전시도 열어
"원주민·귀촌인 화합 장 기대"
미술관과는 왠지 잘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시골마을에, 그것도 주민들이 힘을 모아 미술관을 만들었다.
소설 <토지>의 무대인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 들판이 바라보이는 입석마을에 최근 '마을미술관 선돌'이 들어섰다. '선돌'은 마을 이름인 입석(立石)을 우리말으로 바꾼 것. 비록 작고 소박한 곳이지만 주민이 힘을 모아 만든 공간이라 서울의 유명한 미술관이 부럽지 않다.
입석마을회관 앞 너른 마당에 들어선 마을미술관 선돌 옆에는 첫 전시회 의미를 알리는 맷돌 끄는 황소 한 마리가 문지기처럼 관람객을 기다리고 있다. 건물 외관은 예전 그대로지만, 내부는 여느 미술관과 비교해도 모자람 없이 꾸며져 있다. 마을미술관인 만큼 86㎡의 작은 공간이다. 지은 지 26년 된 건물로 원래 마을주민들의 공동작업장으로 사용되던 공간이었다. 세월의 흐름 속에 그 역할이 사라지면서 오랫동안 방치됐다가 주민들 손에 새로운 공간으로 탄생했다.
마을미술관 선돌은 입석마을 주민과 박민봉 이장, 하동에 귀촌한 경성대 회화과 하의수 전 교수, 하동주민공정여행 놀루와가 의기투합해서 마을 만들기 사업의 하나로 만든 작품이다. 지난해 상반기부터 예술을 통해 마을을 활성화해보자는 의견이 모이자 주민과 소통해 이번에 결실을 봤다.
박민봉 이장은 "마을 공동작업장으로 지어졌지만, 농사가 줄고 점차 활용도가 떨어지면서 오랫동안 방치된 곳이다. 마을에는 형제봉주막과 지리산둘레길도 있어서 많은 관광객이 찾고 있는데, 방치된 공동작업장을 활용하면 마을이 더 살아날 것 같아 1년간 의논 끝에 미술관을 열었다"고 말했다.
개관에 맞춰 열린 첫 전시회 이름은 '음메, 나 여기 있소'로 '소'가 주제다. 빠름에 익숙한 현대사회에서 소의 걸음처럼 인간답게 천천히 끊임없어 이어지자는 의미에서 소를 주제를 삼았다. 입석마을이 있는 악양면이 슬로시티란 점도 동기로 작용했다.
미술관 내부에는 소와 관련한 다양한 미술 작품과 오래된 생활용품, 농기구 등 50여 점이 7월 31일까지 전시된다. 주민 4명이 3개월 도슨트(전문 해설사) 수업을 받고 미술 설명과 안내를 하고 있다. 작품은 하의수 전 교수의 도움을 받아 마을주민들이 직접 그렸다. 생활용품과 농기구 등도 마을주민들이 조상 대대로 간직했던 것들이다.
미술관에서 만난 김현주(경기도 성남시) 씨는 "형제봉주막을 찾았다가 우연히 보게 됐는데, 마을 공동작업장을 고쳐서인지 운치가 있다. 소박하고 정겹다"고 말했다.
선돌은 미술관이라는 단순한 공간을 넘어 주민 간 화합과 소통의 공간으로서의 역할도 기대돼 의미를 더하고 있다. 박 이장은 "마을 120가구 중 45가구가 귀농·귀촌한 주민이다. 그동안 사이가 서먹서먹해서 화합이 잘 안 됐다. 동네 화합잔치를 열어서 그나마 괜찮아지고 있다. 미술관을 통해 만남이 잦아지고 이어지면 더욱 화합할 기회가 될 것 같다"며 뿌듯해했다.
마을주민들은 이번 첫 전시회가 끝나면 악양면의 대표 농산물인 대봉감과 하동 녹차를 주제로 한 전시회는 물론, 자신들이 직접 찍은 사진이나 간직해온 옛 사진을 모아 전시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