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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매·관리 못하는 집 도시 청년에게 임대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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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도민일보] 조문환 시민기자
속성
2021/08/09
면·읍지역 빈집 많지만 살 만한 집은 정작 없어 소유주에 수리비 지원 비용만큼 임대 의무화 '로컬 되살리기' 어떨까
◇1유로의 대박 = 1유로에 중세풍의 고풍스러운 저택이 매물로 나왔다는 뉴스가 지난해 12월에 떴다. 아쉽게도 멀고 먼 나라 이탈리아에서 날아온 소식이었다. 한국이었다면 내가 선뜻 구매했을까? 카스트로니냐노시 이야기다. 이 시는 그동안 인구가 줄고 빈집이 생겨나자 주택 100채를 매입한 후 1유로에 매물로 내놓은 것이다. 조건이 있다. 보증금 2000유로를 걸고 3년 내 리모델링을 해야 한다. 이런 집들을 수리하는 데 드는 비용은 한화로 4000만~6000만 원 선이다.
비단 이 도시뿐 아니다. 시칠리아의 무소멜리시를 비롯한 19개 시에서도 같은 모습으로 진행 중인데 전담 온라인 사이트까지 있다. 그간 무소멜리시에서만 180채가 매매됐다고 한다.
지금도 존재하는지 모르나 한때 우리나라에 이중 곡가제라는 것이 있었다. 농민으로부터 쌀을 비싸게 사서 시민들에게는 싸게 파는 정책이다. 농민소득은 안정화시키고 물가는 잡겠다는 정부정책이었다. 이를 빌려간 것이 이탈리아다. 일종의 이중주택가격제다. 도시를 살리기 위해 현실적인 여건보다 비싼 값에 집을 매입한 후 고작 껌값도 되지 않는 1유로에 파는 것이다. 시로 봐서는 '울며 겨자 먹기 식'일 수 있지만 그래도 동네가 존속된다면 남는 장사일 수 있다.
◇장마에 마실 물 없다? = 홍수가 나면 가장 긴급히 필요한 것은 마실 물이다. 수질이 오염되고 수도관이 파괴되는 등 식수공급이 원활하지 않기 때문이다. 물이라고 다 마실 수 있는 것은 아니다. 2019년 현재 우리나라 주택보급률은 104.8%다. 서울이 96%로 가장 낮고 경북이 117.3%로 가장 높다. 경남은 112.1%로 충북 114.5%, 전남 113.6%, 충남113.3%, 강원112.8%의 뒤를 잇는다. (이하 통계자료는 국가통계포털에서 발췌)
2019년 통계에 의하면 우리나라 다주택자 중 5채 이상 보유자가 11만 8000여 명, 10채 이상 보유자는 무려 4만 3000여 명이다. 반면 무주택 가구는 43.6%인 888만 6922가구다. 이 중 경남은 37.0%로서 울산의 35.9% 다음으로 낮은 수치다.
◇이 와중에 빈집 = 전국 주택 수는 1812만 6954호로 그중 빈집은 8.4%인 151만 7815호다. 전남15.5%, 제주 15.1%, 강원 13.4%, 경북 13.3%, 경남은 11.6%다. 경남 시군의 경우 남해군 20.6%, 합천군 20.1%, 고성군 17.6%, 산청군 17.4%, 하동군 13.2%다. 시지역의 경우 거제시 17.8%, 밀양시 14.3%, 사천시 14.0%, 통영시 13.0% 순이다. 무주택 가구 43.6%에 설상가상으로 빈집이 8.4%나 된다. 빈집을 제외한다면 실제 무주택 가구는 수치상으로 나타난 것보다 훨씬 많다는 결론까지 도출된다. 무주택자가 받는 압박이 더 세다는 뜻이다.
도시와 농촌은 빈집의 분포에서도 차이가 심하다. 도시라 할 수 있는 동지역의 빈집 비율은 6.8%인 반면 농촌이라 할 수 있는 면지역은 15.5%나 된다. 역시 농촌지역에 포함될 수 있는 읍지역도 12.3%다. 빈집이 지닌 의미가 적지 않다는 뜻이기도 하다.
◇빈집의 의미 = 내가 일하고 있는 놀루와의 한 직원은 지난 재직기간 2년 4월 동안 네 번이나 주택을 찾아 방황했다. 두 번은 집 주인의 사정에 따라 집을 비워주어야만 했다. 하동군의 빈집은 13.2%다. 그래도 청년이 살 집이 없다니? 마치 장마에 마실 수 있는 물이 없는 것과 같다. 놀루와 직원뿐 아니다. 귀농인들도 입장이 동일하다. 농촌에 거주하다 보면 집을 구하는 발길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이것은 비단 하동만의 일이 아닐 수 있다.
농촌지역의 빈집 문제는 집 이상이다. 농촌문제를 해결하는 열쇠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이 흘러 들어오는 파이프라인과 같다. 수도꼭지만으로는 물을 전달 할 수 없듯이 파이프 없는 물은 효용가치가 낮다. 도시에서 농촌으로 하방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으나 이들을 유인할 파이프가 원활하지 못해 쉽게 감행하지 못하게 만든다.
빈집은 로컬 회생의 인큐베이터이기도 하다. 도시민들 특히 청년들은 가용 자본이 빈약하다. 큰 자본이 투입되는 주거만 마련된다면 실험정신으로 무장된 청년들이 농촌으로 밀물처럼 밀려올 가능성은 충분하다. 주택을 제공하고 우선 이들이 안심하고 오게 하자. 그런 후에 시간을 주고 마음껏 놀게 하자. 얼마 지나지 않아 자연스럽게 창조적 발상으로 끼를 풀어낼 것이다. 기성 예술인들도 마찬가지다. 이들에게 주택은 주택 이상의 것이다. 안전한 아지트요, 창작소요, 주민들과 소통을 위한 접점이기도 하다. 귀농인 또한 마찬가지다.
◇빈집 문제 해결 암초들 = "곧 죽어도 고향집은 팔지 않습니다"는 곧 쓰러져가는 집들이 그대로 방치되고 있는 주된 이유다. 이 말에 어느 누가 '태클' 걸 사람 있을까? 자녀들이 도시로 나가고 부모님들이 별세한 주택들은 대부분 관리가 되지 않는다. 몇 년 지나면 허물어지기 시작하지만 그렇다고 뾰족한 대책이 없다. 어릴 적 자랐던 집이 그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 위안이 되고 고향에 가야 할 이유가 되기 때문이다. 이들 또한 언젠가는 고향으로 돌아가 여생을 마무리하겠노라는 굳센 다짐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기도 하다.
빈집이 된 후 10년 이상 지난 주택은 수리하기조차 힘들다. 차라리 철거하고 신축하는 것이 절차상으로나 예산상으로 이익이 될 것이다. 경남의 경우 노후 정도에 따른 빈집현황을 보면 4등급인 철거대상이 18.1%, 불량주택인 3등급이 28.4%로서 전체 47%에 육박한다. 이들은 농촌경관을 훼손하는 것은 물론 안전과 보건 등 마을 활성화에 심각한 저해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고향집에 대한 강한 애착과 노후로 회생 불가능한 빈집은 빈집 문제 해결의 가장 큰 암초로 자리하고 있다.
◇빈집 공유제 = 맞바람이 불어야 연이 하늘로 비상한다. 비행기도 마찬가지고 새들도 그렇다고 한다. 뒤에서 바람이 불면 연은 추락하게 된다. 빈집이 뿜어내는 역풍은 주택문제 해결의 맞바람일 수 있다. 곧 죽어도 팔지 않겠다는 고향집을 무상 수리 후 중장기간 보존시켜준다는 명분을 내세우면 될 것이다. 소유자 입장에서 보면 주택이 온전하게 수리되고 관리비도 들지 않는다. 일정 기간 후에는 소유자가 활용할 수도 있다. 가칭 빈집 공유제라 부르자.
노후 정도에 따라 의무적 임대기간을 3년, 5년, 7년, 10년 등으로 차등하고 그 차등만큼 수리비용을 투입해 수리를 한 후에 청년, 예술인, 귀농인 등에게 무상 또는 적절한 비용으로 임대하자는 것이다. 기업이 사회공헌사업으로 함께한다면 금상첨화가 될 것이다. 주택 상태에 따라서 1000만 원, 3000만 원, 5000만 원 정도만 투입하면 살아가기에 어려움이 없는 주택들이 많다. 물론 대규모 수선이 필요한 주택도 있다. 1억 원가량 소요된다고 하자. 대신 이들 주택은 10년 이상 장기 무상임대차계약을 맺으면 된다.
결국 수리에 들어가는 비용만큼 최소 임대기간을 정하면 된다는 얘기다. 이들 예산은 이탈리아 많은 도시들이 큰 비용으로 빈 집을 매입 후 1유로에 매각하는 것에 비하면 그리 큰 부담은 아닐 수 있다. 농촌을 살리고자 하는 마음이 어떠하냐에 달려 있다.
우선 전국의 기초자치단체 중 82개 군 지역에 시범적으로 시행해 보자. 군 지역 자치단체별 10개 주택을 개보수한다면 자치단체당 대략 3억~5억 원(동당 3000만~5000만 원으로 가정), 82개 군지역 전체를 대상으로 한다면 820호에 246억~410억 원가량이 소요될 것이다. 성공 여부를 판단해서 연차적으로 확대해 나가도록 하자. 수혜 대상자도 청년과 귀농인, 예술인뿐 아니라 학자, 연구원, 외국인 및 창업단계에 있는 기업이나 연구소와 같은 꾸러미 형태로도 유치가 가능할 것이다.
이탈리아처럼 자치단체나 국가에서 빈집을 매입하여 장기임대 또는 매각할 수 있다. 실패할 확률도 있지만 실행하지 않으면 더 발전적인 대안을 찾기가 그리 쉽지 않을 것이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은 그냥 나온 말이 아니다.
◇로컬활성화라는 꾸러미 상품 = 굳이 '로컬회생'이라는 말을 하고 싶지 않다. 너무 비관적으로 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로컬활성화'라는 희망적인 말을 쓰고 싶다. 로컬활성화는 하나의 꾸러미 상품이다. 꾸러미는 하나의 제품이 아닌 여러 가지가 묶일 때 가치를 지닌다. 이 로컬활성화라는 꾸러미 안에는 빈집, 재생, 인구, 소멸, 고령화, 교육, 의료, 다문화, 귀농과 같은 낱개의 상품이 엮여 있다. 어느 것 하나만 떼 놓고 대안을 말하기가 어렵다. 하나하나가 나머지 것들에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꾸러미 보따리를 풀면 처음 잡히는 것이 빈집이다. 빈집을 열지 않으면 나머지 상품도 열 수 없다. 이것이 빈집이 가지는 의미다. 정부와 지자체가 이 빈집을 활짝 열어젖혀주길 기대한다.